오그세논과 시르카

|



<회담장에서 시비가 붙은 오그세논과 시르카>


요정과 인간이 최초 조우했던 것은 과거 브리오덴의 린하르트 라이히르 왕의 정복 전쟁 막바지 즈음이다.


그렇다면 요정과 인간이 최초로 충돌한 때는 언제인가?

공식적으로는 요정의 존재를 알아내고는 그들을 '정화'하기 위해 원정군을 꾸려 서쪽으로 진군했던

 빛의 교단 마지막 성녀 '발트라우스 라그니'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야사로는 당시 피르벤의 왕 '은색 숫소 오그세논'의 일화가 가장 먼저라고 전해진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교단 원정군 포로로 있다가 탈출한 오그세논이 요정들에게 발견되어 습격당했고,

반격을 개시해 작은 요정 군대를 몰살시켰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가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는

이야기를 말하고, 인정하는 자가 오그세논 자신 뿐이었기 때문이다.


오그세논은 평생 이 이야기를 자랑처럼 떠들고 다녔는데, 제일 처음 이 이야기를 꺼낸 곳이 하필 왕들의 회담장이었다는 게 문제였다.

왕들의 회담은 요정들이 교단 원정군과 벌어진 전투의 피해를 인간 왕국들에 묻기 위해 시작된 것으로,

교단이 징발한 병력은 분명 각 왕국의 병사들이 맞긴 했지만 자의로 병력을 내어준 것이 아닌 인간 왕들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인간들도 교단에 당한 피해자라는 것을 해명했으나 요정들의 언변을 당해낼 수 있는 자가 없었고,

생각보다 피해에 대한 보상 요구가 부담스럽지 않았기 때문에 회담은 별 무리없이 진행됐다.


회담이 끝나는 마지막 날에 큰 연회가 열렸는데, 바로 그 자리에서 술에 취한 오그세논이 처음으로 그 이야기를 꺼냈다.

이야기를 듣는 요정 왕은 덤덤한 표정으로 일관했으나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이야기를 마친 오그세논이 요정왕 뒤에서 경호를 하던 숲지기(요정족 군인을 칭하는 말이다)를 무시하는 욕을 하고는 술잔을 집어던졌고

술을 뒤집어 쓴 숲지기가 망토를 집어 던지고 오그세논 앞으로 인상을 찌그러뜨리며 성큼 다가와 얼굴에 침을 뱉었다.

그 숲지기는 놀랍게도 여성이었으며, 이름은 '시르카'였다.


순간 연회장은 그 두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오그세논은 '자신이 치렀던 전투를 이 자리에서 다시 보여주겠다'며 비틀거리는 채로 손을 더듬어 자신의 투구를 찾아 썼고, 

부하들에게 자신의 도끼를 가져오라고 했다.


그걸 지켜보던 시르카는 발로 오그세논의 등을 '기분 나쁘게 슬쩍' 밀었는데, 부아가 치민 오그세논은 바로 등을 돌려 주먹을 날렸다.

시르카는 가볍게 주먹을 피했지만 긴 머리카락이 오그세논에게 잡혀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다.

이후로 서로 주고 받듯이 주먹 세례가 오가고, 짐승들이 싸우는 것처럼 서로 엉켜서 정말 '추하게' 싸웠다고 한다.


아무리 싸움에 강하다고 정평이 난 오그세논이었지만 그는 사고로 인해 눈이 거의 먼 상태였고, 상대는 요정이었던 게 문제였을까?

결판은 나질 않았고 서로 악에 받쳐서 상대를 정말 죽이려고 하자 그 때 가서야 주변에서 뜯어 말렸다고 한다.

싸우던 두 명은 피와 멍투성이가 되서 연회 자리에서 쫓겨났다.


다음날 아침에 정신을 차린 오그세논이 먼저 요정왕에게 찾아와 자신의 행동을 사과했고,

요정왕은 덤덤하게 자신의 부하가 더 무례했으니 개의치 말라고 한 뒤 회담장을 떠났다.


한 달 뒤에, 회담장에서 요정들은 자신들이 내세운 조건대로 각 나라에 외교 대사들을 임명하여 파견했다. 

브리오덴에는 로나브, 힌스트에는 라프너, 호흐반드에는 밀리안, 세글렌에는 레룸이라는 요정들이 각각 파견되었다.


물론 피르벤에도 요정이 한 명 왔다.

그 요정은 왕궁에 도착하자 마자 왕에게 성큼 다가가더니, 얼굴에 침을 뱉었다.

요정 왕은 뒤끝이 끝내주는 왕이었던 것이다. 



-그레고리


'설정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갑옷 논쟁  (5) 2016.07.15
오그세논과 시르카  (9) 2016.04.07
청마법사  (5) 2016.04.06
라프너의 편지  (13) 2016.01.25
뢰베  (11) 2015.12.12
망치꾼 호튼  (6) 2015.12.11
Trackback 0 And Comment 9
prev | 1 | 2 | 3 | 4 | 5 | 6 | ··· | 10 |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