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옷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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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사귄 요정 친구가 하나 있는데, 언젠가 그가 나에게 와서 이런 말을 했다.


"인간들은 철판떼기를 온 몸에 두르고 도대체 어떻게 싸운다는 거야?"


 요정들은 이따금씩 우리에게 재미있는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우리가 숨을 쉬면서 존재를 쉽게 망각하는 공기처럼, 우리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그들의 눈에는 이상하기도 하고, 새롭기도 하니까. 


"요정들은 수천 년 동안 전신 갑옷을 만들지 않았다는 말이야?"

"내 기억 상으로 몇 번 본 적이 있었던 것 같긴 한데, 그걸 입고 있던 놈들은 이미 죽은 놈들 뿐이었어."


 요정들도 쇠를 이용해 갑옷을 만들기도 하지만, 활동성을 위해 전신을 다 쇠갑옷으로 덮는다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수천 년을 살아 온, 그 울창한 숲이 우거진 곳에서 전신 갑옷의 존재는 그저 거치적거리기만 하는 짐일 지도 모르겠다. 


 요정들은 전투를 할 때 항상 허를 찌르는 전술을 사용하며, 개개인의 싸움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아무리 잘 만든 갑옷도, 결국 어딘가엔 틈이 있기 마련이라, 날카롭고 날랜 검을 완벽하게 막을 수 있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그들의 논리다. 어떤 면에서는 징그러울 정도로 실리주의적 사고방식을 신봉하는 그들이, 자신들의 역사에서 얼마나 쉽게 전신 갑옷을 포기했을지는 불 보듯 뻔했다. 


"뭐 어쩌면 일 대 일로 싸우면 유리할지도 모르겠지만, 전투에서는 좀 다르지 않을까? 전술적인 면에서 육중한 갑옷을 입은 병사들은 움직이는 벽처럼 사용되기도 한다고."

"일 대 일로 싸워서 이길 수 있으면, 백 대 백이든 천 대 천이든 싸워도 이기는 거 잖아?"


 요정들은 인간과 조우하기 전까지는 제대로 된 전쟁을 겪은 적이 없다. 그들은 과거에 긴 기간동안 내전을 겪기도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소규모 전투가 연속적으로 이루어 진 것이고, 우리 인간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전쟁'같이 대규모의 병력이 서로 충돌하는 일이 없었다. 그들은 성격상 단합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힘들고, 서로 협력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이익을 철저히 계산하여 움직인다. 인간들처럼 권력에 쉽게 굴복하지도 않으니, 제대로 된 군 체계를 정립하기엔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오죽하면 한 인간 장교가 요정들이 읽던 병법서를 한 번 훑어 보고는 우리 것보다 천 년은 뒤떨어진 쓰레기라고 평했다는 이야기가 있었을까?


 요정과 이런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노라면 마치 어린 아이와 대화하는 것 같다. 분명 길가에 지나가는 요정이 나보다 나이는 천 살은 더 많을 거고 나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을테지만, 정말 어떤 부분에서는 백지 상태나 다름없고 유치하기 짝이 없다. 


"백 명의 병사들이 갑옷을 입고, 일렬로 서서 전진한다고 치자. 아까 내가 말한 것처럼, 상대방에게는 이게 강철벽이 걸어오는 것 같을 거야."

"백 명의 병사들이 다가오는 동안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뛰어서 돌아가면 되잖아."

"그러면 벽도 상대가 뛰는 곳으로 방향을 틀겠지."

"그러면 병사들을 둘로 나눠서 양 쪽으로 돌게 하면 되잖아."

"벽도 둘로 나뉘어서 같이 돌겠지."

"그러면..."

"...그냥 말을 말자."


 다음 날 오전에 난 요정 친구에게 내가 알고 있는 귀족 장교의 집을 들러 서로를 소개시켜 줬다. 계속 물고 늘어지는 질문 때문에 머리가 아파왔기 때문에 이 호기심 많은 마귀 같은 놈을 떨쳐내기 위해서는 다른 희생양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내 친구 둘이 서로 인사를 하게 한 후 차를 몇 번 홀짝이다가, 나는 슬며시 볼 일이 있다고 하며 거기서 도망쳐 나왔다.


 집에 돌아와 낮잠을 자고 나니 해가 질 무렵이었고 나는 느긋하게 장교의 집으로 다시 돌아갔다. 시종에게 물어보니 내 요정 친구는 오래 전에 급하게 떠나고 난 후라고 하여, 장교가 인상을 찌푸리며 나에게 삐져 있을거란 생각에 왠지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장교가 앉아있는 방으로 들어갔는데, 놀랍게도 그는 꽤나 만족스러운 얼굴로 담배를 태우고 있는 게 아닌가?


"담배는 어디서 났나?"

"자네 친구가 나에게 줬다네."

"아니, 나도 한 번 얻어 피지 못했는데...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


 장교는 털털하게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그 친구가 자꾸 갑옷~ 갑옷~ 거리길래, 귀찮아서 그냥 창고에서 갑옷 한 벌을 선물해줬더니 실실 웃으면서 품 속에서 주던데?"


 나는 거기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효율이고 뭐고를 떠나서, 갑옷은 쓰던 말던 집구석에 쳐박아 놓기만 해도 멋진 물건이라는 사실.

아마 내 영악한 요정 친구는 나와 논쟁을 벌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멋진 갑옷 하나 얻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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